“오진 위험성” VS “한방 현대화”…양·한의계 ‘초음파 논란’ 왜?_내기 승리_krvip

“오진 위험성” VS “한방 현대화”…양·한의계 ‘초음파 논란’ 왜?_영어로 빙고 쓰는 법_krvip

대법원이 ‘환자의 상태 또는 질환을 단순 진단하는 차원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할 경우,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함에 따라, 관련 업계에서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사실상 허용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대법원, 1·2심 유죄 깨고 '무죄 취지' 파기환송…'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 사실상 허용

"피고인이 초음파 진단 기기를 보조적으로 사용하여 진단한 행위가, 의료 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의 우려'가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에 환송한다."

-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 사건에 대한 지난 22일 대법원의 판결 내용 요지

지난 22일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된 한의사 A씨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2016도21314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습니다.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던 A씨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통상 파기환송심이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점을 미뤄볼 때, 동일한 취지로 확정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데요.

대법원이 '환자의 상태 또는 질환을 단순 진단하는 차원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할 경우,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함에 따라, 관련 업계에서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사실상 허용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에 양·한의계(洋·韓醫界)는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개최 등으로 '찬반 양론'을 펼치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등 양의계는 지난 26일 의협 회장 삭발 및 대법원 규탄 집회에 나서며,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양방과 한방의 의료 범위를 구분한 의료법상 면허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와 쟁점은 무엇인지, 양·한의계 양측의 입장을 취재해 알아봤습니다.

■ 쟁점 ①: 초음파 진단은 양의학적 전문성 갖춰야 하나?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 행위'가 아니라는 근거로 크게 3가지를 들었습니다. ▲관계 법령상 사용 금지 규정 없음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한의학적 의료 원리를 적용·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이 명백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음 등인데요.

대법원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판결 요지에 대해 "(한의사가) '한방 치료 행위를 보다 더 정확히 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단순 질환 진단을 위해 보조적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하는 정도'는 허용된다는 뜻"이라며 "다만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 기기로 '양의적 진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한방 치료에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정도까지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의계는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은 예민한 의료 행위로서 기술적 숙련도가 중요하고, 의료인의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양의학적 전문성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한의사 등 양의학적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의료인에게 사용을 허용할 경우 오진(誤診)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의협은 성명서에서 "초음파 진단 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 행위로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친 의사만이 전문적으로 수행해왔다"고 밝혔습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초음파 진단 기기는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 목적으로 개발된 게 아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개발한 기기를 사용하면서 치료법은 한방으로 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며 "초음파 진단 기기는 0.1㎜만 잘못 움직여도 내막(內膜·체내 기관의 안쪽에 있는 막)이 두꺼워 보이기도 하고 얇아 보이기도 할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기기다. 현대 의학 기기 사용과 관련, 한의계에서는 (한의대 등에) 나름대로의 교육 과정을 두고 있다지만, 투명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게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등 한의계에서는 성명서를 발표, " 현대 진단 기기 대다수는 양의사들이 발견·연구한 게 아니라 문명 발달의 산물인 것으로, 각자(양·한의사) 진료에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최상의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은 의료인에게 보장된 권리"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권선우 한의협 의무이사는 "양의계에서는 '한방 치료 목적이면 한의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수단만을 사용하라'고 하는데, 진료할 때 쓰는 안경과 컴퓨터도 한의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걸 사용하고, 환자에게 약탕기 대신 첩지에 보약을 싸서 주라는 말인가. 초음파 진단 기기는 양의학적 기술이 아닌 현대 과학의 발달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라며 "한의사들도 진료의 객관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초음파를 비롯해 여러 진단 보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지, 초음파 기기에만 진단을 의존하지 않는다. 양의계에서는 '전문성 부족에 의한 오진 위험성'도 언급하는데, 양의사든 한의사든 각자 교육과 숙련에 따라 사용 수준이 달라지는 것으로, 초음파 오진은 '의료인의 개인적 숙련도 차이'에서 비롯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등 양의계는 지난 26일 의협 회장 삭발 및 대법원 규탄 집회에 나서며,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양방과 한방의 의료 범위를 구분한 의료법상 면허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 출처=대한의사협회 제공)
■ 쟁점 ②: 한의원 등 의료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한의원 등 한의계 의료 현장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초음파 진단 기기를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아직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지만, 해당 재판에서 동일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당장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환자에게 검사료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역시 판결 해설 자료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허용된다고 해서, 곧바로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국가의 보건 의료 정책 및 재정의 영역"이라고 밝혔는데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관계자는 " 지금 단계에서는 한의계의 초음파 검사료가 바로 (건강보험 적용) 검토 대상이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해당 의료 행위의 정의가 법적으로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심평원에 따르면, 요양기관이나 치료재료의 제조·수입업자가 '건강보험 적용이 결정되지 않은' 진찰·검사, 처치·수술 및 그 밖의 치료 등의 요양급여를 실시하거나, 새로운 치료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건강보험 적용 심사를 신청'해야 합니다. 신청을 접수받은 심평원은 '안전성, 경제성, 급여 적정성 등을 종합 평가'해 복지부로 넘기고,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최종 심사를 거쳐 요양급여 대상 여부(급여·비급여 처리 또는 신의료기술 판정)를 결정합니다.

당장 초음파 검사료를 '임의 비급여' 명목으로 환자에게 별도 청구할 수도 있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한의원으로서는 건강보험 심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초음파 진단 기기'를 원활히 사용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한의사들도 진료의 객관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초음파를 비롯해 여러 진단 보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지, 초음파 기기에만 진단을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쟁점 ③: 초음파 외 '진단용 의료 기기' 허용의 길 열릴까?

대법원은 판결 해설 자료에서 "의료 행위의 가변성,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응용 영역 확대, 의료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가능성 등을 감안,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에 대해 '새로운 판단 기준'을 세웠다"며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①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② 기기 사용 시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③ 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의료 행위의 원리에 입각, 이를 적용·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게 명백한지?

종전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들을 완화, 앞으로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 위법 여부를 따질 때 보다 유연하게 해석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요. 대법원 관계자는 "이전의 판결에서 나온 기준들은 앞으로 적용하지 말라고 '폐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양의계 일각에서는 '초음파 진단 기기 외에, 앞으로 다른 진단 기기들도 한의사들의 사용이 허용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의협 관계자는 "그런 목적으로 대법원이 '새로운 판단 기준'이라는 용어를 쓴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며 "그렇다면 이후 의사 외에 한의사에게도 혈액 검사, CT(컴퓨터 단층 촬영)·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다 허용해줄 것인지도 우려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반면 한의협 관계자는 "대법원이 새 판단 기준을 세운 취지는 앞으로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 기기를 사용하는 양상이, 한의사의 진료나 의료 행위에 적용되는 것이라면 폭넓게 허용을 해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초음파든 X선이든, 원래는 물리학자들이 발견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 진단용 의료 기기에 의학적 원리가 애초부터 내재돼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법원에서 전향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해당 사건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에만 한정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 해설 자료에서 "초음파 진단 기기의 경우 진단용 방사선 발생 장치(X-ray)나 특수의료장비(CT, MRI)와 달리,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한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이 판결을 의료법에 규정된 이원적 의료 체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